1월의 마지막 날. 일요일을 맞아 많은 등산객들이 충남 공주시 계룡산에 위치한 동학사 입구에 몰렸다. 모처럼 겨울 같지 않은 따뜻한 날씨에 등산객들의 표정은 형형색색의 등산복만큼이나 밝다. 그런 등산객들 사이에 '현수막'을 내건 동호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그런데 현수막 글귀를 자세히 읽어보니 '산악회' 모임이 아니다. 현수막에는 '마라톤 연합회 임원진 워크숍'이라 적혀있다. 사람들의 복장은 아무리 봐도 '등산복'인데 '마라톤' 모임이라니. 그렇다. 이날 현수막 아래 모인 사람들은 '현대·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 소속 임원들이다. 42.195km를 달리는 강철 다리들이 오늘은 계룡산에 오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들은 왜 '마라톤'이 아닌 '등산'을 선택했을까? 궁금증은 우선 산행을 마치고 물어보기로 했다. | ▲ 계룡산 등산을 앞두고 '현대ㆍ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 회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 ⓒ 장정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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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에서 모이니 시간 맞추기 힘드네 이날 워크숍에는 총 8개 동호회가 모였다. 물론 모두 현대·기아차 식구들이다. 서울 본사를 비롯해 울산, 전주, 아산, 화성, 광주, 소하리 등 지역공장 회원들과 남양연구소까지 총 30여명의 동호회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이날 광주공장 동호회 임원들은 등산에 함께 하지 못했다. 아침까지 야간업무가 이어져 등산 시간에 맞춰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할 수 없이 등산 후 업무보고 자리에만 참가했다. 가장 멀리서 온 울산동호회 임원들도 고생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침 9시 3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출발했다는 울산지역 임원들은 이날 야간업무가 예정돼있어워크숍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어쨌거나 10시가 되자 '구호'와 함께 산행이 시작됐다.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들이 산을 오르면서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직장동호회란 성격상 먼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서로 작업 환경에 대해 묻기도 하고 각자 공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갔다. 중간 쯤 올랐을까? "이거 마라톤 보다 더 힘든데"라는 아산공장 이재근 회원의 엄살에 다 같이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다. | ▲ '현대ㆍ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 회원들이 등산에 앞서 이후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 장정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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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 마라톤, 개인사 … '수다'에 빠진 마라토너들 "아산은 어떻게 훈련합니까?" "저희는 따로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퇴근할 때 마라톤으로 퇴근하곤 합니다. 회사에서 집까지 뛰어가는 거죠. 천안지역 거주자는 약 30km 정도 되고, 온양 지역은 15km 정도 됩니다." "그렇게 편도로 달려버리면 뒤처지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U턴 코스는 힘들면 중간에서 기다리다 같이 돌아오면 되는데 편도는 못 따라가면 그걸로 끝이잖아요. 초보자들은 그렇게 뒤처져버리면 자칫 마라톤에 대한 취미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아무래도 업무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울산 박진환(41) 훈련팀장과 아산 민구식(47) 회원은 서로 훈련법에 대해 정보를 나누고, 조언을 하며 산을 올랐다. 이처럼 회원들은 직장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라톤 소식, 훈련 방법을 공유하며 산을 올랐다. 회사 이야기에서 서로에 대한 안부로, 그리고 마라톤으로 이야기의 꼬리는 이어졌다. 은근히 자신들의 동호회 회사에 대한 자랑도 늘어놓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웃고 즐기는 동안에도 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역시 '마라토너'다. 회원들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니 '등산'을 워크숍 일정으로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화'의 시간을 통해 회원들 사이를 보다 가깝게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아산지역 민구식(47) 회원 역시 "오늘 처음 참석했는데 등산을 통해 얼굴 익히고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 할 수 있어 참 좋다"며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 나가면 같은 현대·기아 직원이라도 지역 다르면 서로 말 한마디 없이 헤어지곤 했는데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소감을 밝혔다. 본격적인 업무보고 … '공식 대회', '유니폼' 놓고 '수다' 그렇게 약 3시간여 걸친 산행이 끝내고 식당으로 돌아오니 광주공장 회원들이 도착해 있다. 이제 본격적인 연합회 업무보고와 올해 계획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차례다. 등산이 제법 효과 있는 모양이다. 자리에 앉은 회원들 사이에서 보다 활발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회의가 시작되자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나눠준 자료를 읽었다. 이성환 회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지난해 솔선수범으로 고생한 동호회에 대한감사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올해 진행할 사업들에 대해 각 지역별로 의견사항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 ▲ '현대ㆍ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 회원들이 워크숍의 일환으로 계룡산을 오르고 있다. | ⓒ 장정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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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워크숍에서 제기된 문제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유니폼' 문제다. 지역 동호회별 유니폼은 있지만 연합회 차원의 유니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문제는 '비용'. 동호회 유니폼에 이어 연합회 유니폼까지 회원들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에, 결국 회사 측에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는의견이 접수 됐다. 이 밖에도 연합회 공식대회와 지역 동호회 대회 문제 등 올해 진행할 사업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서로의 입장에 따라 찬, 반 의견이 조금씩 다를 때도 있었지만, 서로 양보를 통해 의견을 조율해 갔다. 이 회장은 "힘든 일정에도 참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우리 연합회가 여러 동호회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힘을 모아 서로 도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전하며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사랑의 연탄', 올해는 북한으로~! 한편, 이날 워크숍에서는 '사랑의 연탄배달' 사업에 관한 내용도 의결됐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북한 주민을 위한' 사랑의 연탄배달 행사를 갖기로 한 것이다. 현대ㆍ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는 3년 전부터 '사랑의 연탄배달'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는 특별히 10만장의 연탄을 마련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낼 계획이다. 이처럼 '현대·기아자동차 마라톤 동호회'는 연합회 차원의 봉사활동 뿐만 아니라 지역별 봉사활동도 열심이다.울산의 경우 매년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집 고쳐주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고, 화성, 광주, 소하리 등은 마라톤 대회 참가 기념품으로 받은 쌀 등을 불우이웃에게 나눠주는 등지역 사회에 대한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운동도 하고, 대화도 나누기엔 '산행'이 딱 '등산' 워크숍을 고집하는 이성환 회장 | 현대·기아자동차 마라톤 연합회를 이끌고 있는 이성환 회장(56)은 마라톤 동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모임을 '등산'으로 결정했다. 사실 연합회는 매해 마라톤이 아닌 등산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있다. 왜일까? 이성환 회장은 "산을 오르는 동안 회원들 간에 서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친목을 다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마라톤이란 운동은 달리는 도중에 많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연합회 모임만큼은 등산을 통해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이 회장의 설명이다. 물론 장소가 '계룡산'에서만 진행되는 것에 불만이 있는 임원들도 있다. 조동철 화성지역 부회장은 "다음에는 워크숍을 각 지역별로 돌아다니면서 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내년부터는 지역을 순회하는 워크숍도 고민 중이다. 이 회장은 기업동호회의 장점으로 "회사라는 집단에 속한 공동체 의식 때문에 단결력이 좋다"고 한다. '애사심'이 강하고 그러한 애사심이 서로를 단결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또한 마라톤뿐만 아니라 '자동차'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처음 만난 사이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 기업동호회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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